미술은 나에게 가난을 선택할 자유를 허락한다
오프닝 퍼포먼스, 플레이타임, 문화역 서울 284
인쇄물, 약 4시간의 퍼포먼스, 웹사이트, 기록사진
2012년 11월 16일, 오후 4시 - 8시
기획: 김실비
디자인: 조현열
퍼포먼스: 양봄이, 최의연
2011년작 미술은 나에게 가난을 선택할 자유를 허락한다는 미술가의 정체성에 대한 반문에서 촉발된 작업이다. 2001년 3월 홍콩에서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에서 열린 39 아트 데이와 연계하여 1차로 벌였던 퍼포먼스는 당시 예술 노동 인정과 복지 문제를 둘러싼 담론을 활성화시킨 고 최고은 작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인식하면서 시작되었다. 미대 졸업 후 진로와 밥벌이 문제는 미술가를 직업으로 상정한 이상 나 자신과, 또래의 동료 미술가들이 직접적으로 당면한 문제였는데, 여기에 더해진 독일 현지에 잔류하려는 의지는 비자와 의료보험 가입을 해결해야만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 남의 국가에서 나의 직업 활동을 제도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연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 미술 활동에서 도출되어야 한다는 점이 최소한의 기준이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제반 증명이 필요했다. 미술가로서의 즉각적인 자기 증명은 활동의 내용보다는 세무, 입출금, 이력에 기반한 것이어야 했다. 분명 한국에서 최고은 작가의 죽음 이후 대두되었던 예술가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인식이 보다 발달된 상태인 독일 내에서조차 기본적으로 미술가로서 직업 생활의 내실은 순전히 금전적인 부분에서 판단된다. 이 사실과 즉각적으로 직면하는 경험을 통해 미대 교육과 활동으로써 축적한 이상과, 이에 대치되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당면해 있던 문제 의식은 39아트데이 홍콩 행사에 참여하게 되면서 퍼포먼스로 귀결되었다. 매년 3월 9일 전세계에서 게릴라식으로 벌어지는 39아트데이는 미술이 삶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를 기리고 축하하자는 다소 순진한 주제에서 출발한 미술 축제이다. 제안을 받고 나는 과연 어떤 의미에서 미술을 아끼며 계속하려고 하는가라는 두번째 질문에 봉착했다. 부와 명예를 가리키는 한 방향을 향해 사는 삶에서 선택지는 하나이다. 사람들은 주로 부유함을 선택한다. 이때 미술 교육과 활동이 나에게 선사한 것은, 이 외에 다른 선택지가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다다르게 하는 생각의 여지이다. 즉 미술은 나에게, 가난은 결코 추구해 마땅하거나 기꺼이 되고싶은 삶의 상태가 아니라고만 가르치는 곳에서 가난이 또 하나의 선택지로서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킨다. 아마도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안에서 도태된 한 사람으로 치부될 지도 모를 직업적 선택이 불어일으키기 쉬울 법한 이 가난은, 언뜻 그렇게 보일지언정 소외되고 비참하고 아사를 향해 가는 가난일 필요는 없다. 즉 또 하나의 선택지로서 가난은, '이것이 아닌, 으레 그럴 필요가 없는, 다른 어떤 가능성'을 함축한다. 동시에 선택지로서의 가난은 실제로 물리적인 빈곤의 상태 자체를 지시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다른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제도는 미술가의 생존 문제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최소한의 보장이라는 문제는 삶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또 하나의 궁극적인 문제 제기는, 어째서 이 직업 선택이 대체로 가난으로 결과되어야 하는가이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누구도 아사의 위험에 노출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자조적인 추모도, 분노에 찬 시위도 아니며, 일종의 성찰적인 산책과도 같은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어쨌든 나는 혹은 내가 아는 우리는 계속하려고 한다는 의미이다.
구 서울역사의 전시 주제로 퍼포먼스의 의미를 다루면서 이 작업을 서울에서 재개한다. 영문으로 홍콩에서 진행하는 일과 모국에서 모국어로, 모국어를 구사하는 대부분의 관객을 향해 발화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울림을 가짐을 깨닫는다.
최고은 작가가 죽기 전 이웃에게 남겼던 쪽지에서 출발하여 가볍고 공기가 통하는 듯하며 의연한 종이 낱장들을 만든다. 작업의 미학적 표면은 나 자신보다도 평면과 인쇄에 민감한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결정된다. 디자이너 조현열과의 소통 과정은 그가 먹지를 대고 활자의 테두리를 손으로 베껴 쓴 각 문구가 인쇄된 A4 규격의 30g 박엽지 낱장들로 귀결되었다. 우리는 많은 문장들을 쳐내어 조약돌처럼 단단한 문구들로 만들었다. 얇은 종이는 빛을 투과시키고, 오래된 역사에 붙어 구겨지거나 누군가의 손에 들려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폐기될 수 있다. 있는 듯 없는 듯하나, 어디에서든 가지런히 존재해나갈 것이다.
퍼포머 두 사람은 20대 초중반의 미술과 인문학 관련 학과에 재학하는 대학생으로, 다양한 미술계 행사에서 도우미나 코디네이터를 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미술 분야에 대한 호기심, 학업에 대한 애정과 중압감,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 나이대에 맞는 생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 오프닝 당일 개장 전 1시간부터 이들은 미술관 구석구석에 다양한 구호가 인쇄된 A4지를 마치 보물찾기를 숨겨놓듯 붙여놓는다. 이 퍼포먼스는 폐장때까지 느슨하게 계속된다. 관객은 전시장 곳곳에 드문드문 붙은 인쇄물이 외부에서 유입되어 벌어진 사고인지, 전시에 공식적으로 속한 것인지 한 눈에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감상과 친목에 집중한 관객이 오프닝동안 서성거리는 와중에도 퍼포머는 마치 전시장 도우미가 준비가 덜 된 작업을 마무리하듯 계속해서 종이를 붙이다가 쉬다가 한다. 그들의 태도는 자연스러우며, 전혀 연극적이지 않다. 잡담을 하거나 노닥거릴 수 있다. 그러다가도 붙이는 행위를 문득 계속한다. 종이는 퍼포먼스 후 전시 기간동안 미술관 곳곳에 보란듯이 혹은 꼭꼭 숨어 붙어있는다. 전시를 방문한 관객은 눈에 띈 종이를 떼거나 주워갈 수도 있고,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 각 인쇄물에는 미술, 가난, 자유, 경제에 대한 이상주의적 문구와 함께 밑부분에 www.artallowsmethefreedomtochoosepoverty.net의 주소만이 명시되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주소를 메모해 두었다가 애써 입력하고 방문할 것이다.
철수 인력이 보지 못하고 지나친 종이는 언제까지고 역 어딘가에 남아 붙어있을 수도 있다.
Art Allows Me the Freedom to Choose Poverty
A project by Sylbee Kim
An opening performance, presented at
Playtime, Culture Station Seoul 284
Digital print, ca. 4 hours' performance, documentation photography
November 16, 2012, 4 - 8 pm
Concept Sylbee Kim
Design Hyoun Youl Joe
Performance Eyun Choi, Bomyi Yang
Art Allows Me the Freedom to Choose Poverty bases on the questioning of the identity as artist. The first performance was held around Asian Art Archive, Hong Kong, in the framework of 39 Art Day: it started from the tragic death of Goeun Choi, through which debates on a possible social system recognising the art labour for the survival of artists was actively arisen in South Korea. The choice of being a professional artist led me struggle for life directly after graduating the art schools, which was a common phenomenon among my colleague artists. Furthermore to assure the stay as an alien in Germany I had to deal with the visa extension and clear health insurance issues. To be acknowledged as an active foreign artist meant that a certain level of income through my art practice had to be proven. In other words, it was way more decisive to clarify tax issues, show bank statements and build up a convincing cv, rather expecting a discursive approach about the content and the philosophy behind my production process. Facing this fact in a country, where the art labour is definitely stronger recognised than in South Korea, I had to admit my naivety on dealing with the reality as an artist.
This contemplation was the basis of the first performance, which was initiated through the invitation to participate to the 39 Art Day event in Hong Kong. 39 Art Day promotes the benefit that art presents to the society and takes place on March 9 every year around the globe. As a response to the somewhat naive notion behind the project, I had to question myself where my appreciation for art comes from, which makes me still say yes to my profession. In a world where the most of the individuals are driven to follow one certain direction which is the money, fame and good life, the desirable choice is one: the wealth. One thing that art education and the experience of practicing it allowed me was the power to question, whether a possibly different idea could exist. Art indicates me a possible fact that poverty may be chosen, still in a society where it is considered that it is not a status to be pursued. The choice of the artistic profession that in most of the cases will lead you to a marginalised or poor life, however, doesn't necessarily mean it to be one that will lead you to misery or starving. Poverty as a choice implies, 'another possible way rather than this, which doesn't need to be that'. At the same time to choose poverty indicates the existential, actual poverty, as most of the existing social systems scarcely protect freelancers including artists. On the other hand, the idea of a minimum protection through a social system indicates a further question on how much do we need to own in a life. Another ultimate question would be: why should this profession lead me to poverty? As no choice of profession must expose someone to the danger of starving.
This is not a mourning nor a demonstration but rather a contemplative walk. We decided to and will, go on.
I reprise this performance in Seoul, as a response to the idea of performativity as the main theme in the exhibition. Reenacting it in the mother country in my own mother tongue which I share with most of the visitors means to deal with new issues.
The final prints are inspired by Choi's last note, from which the airy yet defined, free but resolute surface was born. The asthetical decisions were made through the collaboration with Hyoun Youl Joe, a Seoul-based graphic designer. He traced the phrases using carbon paper, finally printed on 30g-thin, A4-sized paper. We pruned away many sentences to compress them into calmly equivocal riddles suggesting questions on art, freedom, poverty and economics with somewhat idealistic notions behind it. Light passes through the thin layers of paper which will be hung in the old former station building, folded, moved away by a hand or finally discarded. Scarecely to be noticed, still they will go on to exist.
The two performers are college students around their early 20's, and have experienced jobs at art and cultural events. Their curiosity about the field, the pressure from the study, vague anxiety about the future, and youthful energy are all part of the performance. From 1 hour before the start of the opening they will hang the printed sheets of the selected phrases in different corners of the museum, as if preparing a treasure hunting. The performance loosely goes on till the end of the evening. At the first sight, the visitors cannot tell whether this action is an intrusion from the 'outside' or whether it officially belongs to the exhibition. While the visitors wander about viewing and exchanging, the performers keep hanging the sheets as if it were for a delayed preparation of an event. Their attitude should be natural, not theatrical at all. They can chat or pause, then go on again. After the performance, during the exhibition period, some of the sheets will be hung explicitly visible, others very hidden. The visitors may pick and take them away, discard them or just pass them by. Some might make the effort to type the web address www.artallowsmethefreedomtochoosepoverty.net printed as the sole information source about the project from the printed bottom line, then reach here.
The sheets that will be missed during the deinstallation after the exhibition end, might survive to stay hung at a hidden corner of the museum.